"형은 제가 만만해요?"
"넌 내가 안 만만해?"
제 손등에 손바닥을 얹더니 마저 깍지까지 끼는 손이 꽤나 자연스럽다. 여기 밖이에요. 밖에서는 하지 말아요, 제발. 제 손등 위에 얹기만 했는데도 진득한 느낌이 드는 손을 아직 전원우에게 잡히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떼어내 다시 전원우의 앞에 가지런히 놓아 주었다.
그니까, 제가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할 테니까요.
"여기 밖 아니야, 카페. 실낸데?"
벌써 형이랑 집에서, 그런 생각해?
분명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데 금방 저와 얼굴이 가까워진다. 굳이 제 옆에 앉겠다는 걸 말린 게 잘한 짓인지, 아닌지. 별것도 아닌 생각들이 제 머릿속에 가득 찼다. 우리 솔이 다 컸네, 그치? 대뜸 얼굴을 들이밀더니 예쁘게도 웃어 보인다. 대충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니 제가 힘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용기를 가지고 얌전하게 겹쳐 모아두었던 손을 들어 올려 제 양볼을 감싼다. 다른 년들 보면 뒈져, 알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기겁을 하거나, 전원우 뺨을 때리거나 하겠지. 그냥 눈을 감고 아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법밖에는 없다.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게 전원우였다면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최한솔이라는, 거의 전원우의 집 마당이나 지키는 개새끼 급이다. 전원우한테 벗어날 정도의 사람은 아니거든. 어차피, 벗어날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R o o k e y
🐣 원른 전력
🐣 좋다고 말해
🐣 w 넥타이
[어디에요] Am 7 : 20
[나 집 앞인데] AM 7 : 22
[나오라고 해놓고 왜 형이 안 나와요] AM 7 :22
[나 먼저 갈까요] Am 7 : 25
[형] Am 7 : 27
[원] Am 7 : 27
[우] Am 7 : 27
[형] Am 7 : 27
"좆같네, 진짜."
전날 밤 학교에 같이 등교를 하자는 전원우의 문자를 받았다. 내일 학교 같이 가자. 나 잘게. 먼저 만나자 하는 사람이 거의 우리 집 앞으로 찾아오지 않나 싶었지만 발신자가 전원우라는 것에 알았다는 답장만 보내고 생각을 그쳤다. 날이 추워 입술이 금방 트니 집에 굴러다니는 립밤을 아무거나 집어 가라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이럴 거면 나오기 전에 덕지덕지 바르고 올 걸 그랬다. 전원우가 식후 달고 다니던 껌 먹듯이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차에 순간적으로 따가움이 느껴지더니 곧잘 비릿한 맛이 제 입안에 퍼진다. 적응이 안 된다. 짭짤한 것 같으면서도 비린내가 훅 끼치는 게 여간 맡기 좋은 냄새는 아니다.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손등으로 제 입가를 닦아내었다. 물론 손에 들린 핸드폰은 놓지 않고. 진짜 좆같다. 물론 주어는 없다.
다시 여기 오나 봐라. 이 말 들으면 전원우가 또 애기같다 했겠지. 혼잣말 한 번 한 것뿐인데 마지막은 곧바로 전원우로 다가서는 게 여간 화나는 일이 아니다. 나오든지, 기다리든지. 고집 센 놈이 내가 될지, 전원우가 될지는 몰라도 지는 사람이 둘 중에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전원우도 알고서 부른 거겠지.
[자는 거예요 뭐예요] Am 07 : 31
[저 그냥 학교 먼저 갈게요] Am 07 : 31
신경질적으로 코트 안주머니에 핸드폰을 욱여넣었다. 안 와, 안 온다고. 이유 없이 내뱉는 욕지거리와 함께 제 시선이 향한 곳은 전원우도 아니고 그저 전원우네 집 현관문이었다. 주인 닮아서 존나 하얘. 집 주인 닮아서 존나 짜증나. 전원우 닮아서 좆같네. 아오, 팍씨. 그래, 내가 이렇게 꼴아본다고 네가 주인 나올 것도 아니고.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시야에 담기는 아무 죄 없는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화풀이라도 하듯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신발을 바닥에 질질 끌다 이내 제 귀에 꽂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솔아."
전원우네.
"형아 기다렸어?"
전원우, ... 네?
"네? 저요?"
"왜 놀라?"
지금 제 앞에 서있는 사람은 분명 전원우가 맞다. 급하게 코트 안주머니에 꽂아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패턴을 푸는 꼴이 핸드폰을 새로 바꾸고 저번 것보다 큰 액정이 어색하다며 꼭 화면에 두어 번 씩 패턴을 잘못 입력하였습니다, 라는 문구를 띄우던 전원우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글자도 맞다. 솔아, 패턴 입력 잘못했대.
[저 그냥 학교 먼저 갈게요] Am 07 : 31
[♡] Am 07 : 31 - 전원우 형
제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문자 밑에 말풍선이 하나 더 있다. 늦게 봐서 미안한 거면 미안한 거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는 거지 하트는 또 뭐냐 이거다.
"이때 제 문자 확인했어요?"
"엉."
"늦잠 잤어요?"
제 물음에 눈동자를 몇 번 굴리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더니 손에 들려있는 가방을 앞으로 멘다. 열린 지퍼 안으로 들어갈 듯이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찾는다. 안에 든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북적북적 헤집는지 알 길이 없다. 한참 동안 입술을 오물거리며 가방 안을 뒤지다 물건이 보이지 않는지 어깨를 추욱, 늘인다. 교복 마이 주머니, 마이 안주머니까지 뒤지다 마지막으로 전원우가 열심히 찾던 물건을 꺼낸 곳은 교복 주머니였다. 그것도 립밤. 어이가 없어 그대로 내려다보니 전원우도 저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립밤을 좌우로 몇 번 슥슥 움직인다. 보고만 있자니 괜히 아까 뜯어진 제 입술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 대화 주제를 바로 잡았다.
늦잠 잤냐구요, 왜 내 문자 늦게 봤냐고.
"나 어제 일찍 잤잖아."
"일찍 일어났어요?"
"엉."
그럼 일부러 내 문자 씹었다는 거 아니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존나 깊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괴상한 소리를 입 밖으로 뱉었다. 솔이가 나 얼마나 기다리는지 보려구. 너는 나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맨날 속냐? 뭐가 그리도 좋은지 코를 찡그려가며 큭큭 거리는 것이 지금 딱 한 번만 때리면 좋을 타이밍일 것 같았다.
숨넘어갈 듯이 웃을 때는 언제고 다시 웃음을 거둔 채로 이제는 립밤을 쥔 손을 멈추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입술이 찐덕해질 때까지 두텁게도 립밤을 바른다. 고개는 도리도리, 바쁘게 움직이면서 왜 시선은 오로지 저한테 꽂힌 건지. 제 머리를 헤집던 손을 멈추고 영 이상한 자세로 전원우를 내려다보았다.
"저, 진짜로, 형 때리고 싶어요."
"형은 너한테 진짜로, 뽀뽀하고 싶어요."
"닥쳐요, 쪼옴."
제 말을 듣고서도 계속 발그레 웃으며 립밤을 다시 교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옷매무새 정리를 한다. 혼자 입술을 주욱 내밀고 허공에 쪽쪽, 해 주는 건 덤이다. 조끼 구겨졌잖아요. 바지만 올리면 다냐. 다리 길다고 자랑해요? 아직도 양팔을 다 들고 머리를 쥐어잡고 있는 제 손을 내려 전원우의 조끼를 정리해 주었다. 이렇게, 좀, 피라구요.
이 나이에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긴데, 얼마나 등허리가 아픈데. 친히 허리까지 숙여가며 옷매무새 정리를 해 주었더니 굽힌 허리를 주먹으로 콩콩 치며 일어났을 때는 볼에 나 부끄러워요, 라 써놓고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 전원우가 보였다 왜요, 또 뭐 할 건데요. 또 어떤 갑질을 하려고 저렇게 웃고 있나 싶었다.
"너, 너어."
"뭐요."
"입술 엄청 텄네."
"바람 존나게 부는데 밖에서 사람 좀 기다려서요."
어엄청 추운데. 얼굴을 들이밀며 검지로 제 입술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게 뭐냐는 듯이 마냥 눈을 껌뻑거린다. 제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놀리듯 제가 귀엽다 말한다. 눈을 크게 떠 저와 눈을 마주하다, 얼마 못 가 눈을 내리깔며 제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제 보여요? 보이냐구요. 피 난 거.
"응, 보여."
"내가, 진짜. 삼십 분을 기다려. 그 정도면 학교 찍고, 형 집 찍고, 다시 저희 집 가는 거리에요."
"할까?"
"아, 뭘요!"
전원우는 몸을 베베 꼬며 비음 섞인 소리를 가득 내기 시작했다. 진짜 왜 이래. 제 표정이 생각보다 많이 썩었었는지 전원우는 검지와 중지를 무슨 공룡 앞발처럼 만들어 제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래놓고서 제 눈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눈깔. 존나 무섭네요. 형 지금 감정 잡잖아. 뭐, 그니까 뭐요.
뽀뽀.
나 립밤 발랐잖아.
미쳤어?
별루.
방금까지 다 입모양으로 끝낸 말들이다. 진짜 미쳤어요? 흥분해서 입 밖으로 이상한 쇳소리까지 나와버렸다. 인간 립밤. 자기가 말해놓고 웃긴지 박수까지 쳐가며 깔깔 웃는다. 어쭈. 갑자기 목을 가다듬은 전원우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다시 시선을 제게 고정했다. 아마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서는 제게 한 발짝 더 다가온다. 자연스레 저는 뒤로 한 발짝 떨어지자 양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전원우가 제 허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길바닥에서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어디서 처음 들어본 말도 아니다. 물론 모든 출처는 전원우이긴 하지만. 저렇게, 아니, 입술은 왜 번지르르해서. 그래, 립밤. 립밤 그 씹새끼가 문제다.
"너 입술 엄청 텄어."
"알아요."
"그니까,"
"안다구요, 씨이발..."
저의 최대치까지 몸을 뒤로 뺐다. 제 허리에 존나 쫙 달라붙은 그 손 좀 치워 줄래요. 검지로 제 허리를 가리켰더니 우리 솔이 귀여워, 어쩌지. 라며 근본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안면 근육도 어찌할 줄을 모른다. 지랄하지 말구요, 제발. 제 말이 끝나자마자 제 허리를 붙잡고 있던 전원우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손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간지러워요. 감흥 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자 그대로 삐쳐서는 치이, 한다.
"그니까, 우리 얌전히 학교 좀,"
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짧고 낮은 제 비명과 둔탁한 마찰음에 길게 늘어지고도 남을 말꼬리를 잃었다. 깜짝 놀라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전원우가 제 시야에 없고, 제 품에 안긴 전원우 뿐이었다. 저 현기증 그거 다 장난인 줄 알았거든요? 응. 진짜 현기증 나요. 왜? 얌전히 학교 가고 싶어서요….
"야."
"촨솔."
"뭐요."
"너 솔직히 지금 좋지."
"형은요."
"좋지."
"너도 좋지?"
"아, 예."
"제대로 말해."
제 허리를 감싼 전원우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좋아 죽습니다요. 제 성의 없는 답변에도 좋은지 제 어깨에 자꾸만 고개를 파묻는다. 전원우가 입은 패딩과 제 코트가 맞닿아 이상한 소리가 난다. 저를 꽈악, 껴안고는 몸을 좌우로 흔들다 갑자기 저를 밀어낸다. 눈에 물음표를 달고 전원우를 쳐다보니 입은 꾹 다물어져 있는데 입꼬리는 자꾸 씰룩거린다.
"솔아, 그거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듣고 말해."
"뭐요."
"뽀뽀하면 더 좋다?"
내가 지는 쪽이 되든, 곱집 센 새끼가 되든 상관은 없었는데. 양쪽 다, 시작한 거 제대로 끝을 봤으면 좋겠다 이 말이다.
나 : ?
읽은 분들 : ?
전력주 님 : ?
지나가던 강아지 : ?
원래 조금 길게 쓰려고 했다가 급하게 전력으로 끝낸... ㅋㅋㅋ 왜냐면 내일까진 줄 알았던 바보! ㅎㅅㅎ
이 글은 예쁘신 분들의 rook1e 들으면서 쓴 거구... 장난꾸러기라는... 말의... monkey 를 합친 제목이구...
원래는 뒷 내용 더 있는데,,, 썰로 풀면 되게쬬...
급하게 쓴 거라 확인도 제대로 못 했네요 9ㅁ9 어차피 지각인데 보면 화날까 봐 안 볼래 9ㅁ9
읽어 주셔서 감사함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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